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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라운지] 디지털 돌봄의 그늘, 편리함 뒤에 남겨진 사람들
병원 예약은 앱으로 하고, 건강검진 문진표는 모바일로 작성한다. 복지서비스 신청은 온라인으로 안내되고, 상담 접수는 QR코드로 이루어진다. 음식점의 키오스크, 은행의 모바일 인증, 병원의 무인수납기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손가락 몇 번이면 예약하고, 신청하고, 결제하는 시대다.
문득 집 전화로 친구에게 연락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수화기 너머로 “안녕하세요? 저 선희 친구 OO인데요, 선희 있어요?” 하고 먼저 자신을 밝히고, 어른께 인사를 드리던 시간. 목소리만으로도 상대의 기분을 짐작하고, 짧은 안부 속에서 가족의 평안까지 묻던 시절이었다. 지금보다 느렸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확인하고 배려하는 온기가 있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 삶을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돌봄의 영역에서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기술이 빨라진 만큼, 돌봄도 정말 더 가까워졌는가.
사회 전체의 방향도 분명하다. 정부는 의료·복지·돌봄 영역에 인공지능과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보건복지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위기가구 발굴, 상담, 서비스 추천, 신청 지원 등 복지행정 전반의 혁신이 추진되고 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도 2026년 3월부터 전국 229개 시군구에서 본격 시행되며, 노쇠·장애·질병 등으로 일상생활 유지에 어려움이 있는 시민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의료·요양·돌봄서비스를 연계받을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 AI 기반 복지·돌봄 혁신 로드맵, 복지 위기가구 조기 발굴, 원격 협진, 응급의료 자원관리, 생성형 AI 상담과 같은 과제까지 더해지면서 디지털 돌봄은 앞으로 더욱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2025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20.3%이며,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늘어나지만, 가족과 현장의 인력만으로 모든 돌봄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이때 디지털 기술은 사람을 더 빨리 발견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하며, 현장의 부담을 줄이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혼자 사는 어르신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구를 찾아내며, 만성질환자의 건강 상태를 원격으로 확인하는 기술은 분명 돌봄의 가능성을 넓힌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의 속도가 빠를수록 우리가 함께 보아야 할 그늘도 있다. 모든 시민이 같은 속도로 기술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5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취약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을 100으로 보았을 때 77.9%였다. 계층별로는 저소득층 97.0%, 장애인 84.1%, 농어민 80.6%, 고령층 71.8%로 나타나, 특히 고령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이 가장 낮았다. 또한 같은 조사에서 디지털 접근 수준은 96.6%였지만, 디지털 역량 수준은 65.9%로 나타났다. 이는 기기를 가지고 있거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것과 실제로 디지털 서비스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병원 예약 앱을 능숙하게 쓰고, 복지서비스 신청 절차를 이해하며, QR코드와 본인인증을 거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작은 글씨를 보기 어려운 시력 저하, 손 떨림이나 느린 반응속도, 복잡한 인증 절차, 낯선 용어, 반복되는 비밀번호 입력은 누군가에게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벽이 된다.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화면 구성이나 음성 안내의 부족이 장벽이 될 수 있고, 인지기능이 저하된 사람에게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신청 과정이 큰 부담이 된다.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울과 불안, 위기 상황에서는 집중력과 판단력이 떨어질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 이때 접수창구가 앱과 챗봇뿐이라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오히려 가장 먼저 배제될 수 있다.
지역사회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건강관리 앱, AI 스피커, 스마트 돌봄 기기, 비대면 상담, 온라인 교육은 분명 유용하다. 하지만 디지털 돌봄이 현장에 안착하려면 기기를 보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르신에게 스마트기기를 나눠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기를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설명해주는 사람이다. 온라인 신청 창구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온라인 신청이 어려운 시민이 전화나 대면으로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길을 남겨두는 일이다. AI가 위기 가능성이 높은 가구를 찾아냈다면, 그 다음에는 사람이 문을 두드리고 안부를 묻고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디지털 취약성은 개인의 부족함이 아니라 사회적 설계와 지원의 문제이다. 기술을 잘 쓰는 사람에게만 맞춰진 서비스는 효율적일 수는 있어도 포용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앞으로의 지역사회 돌봄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되 디지털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함께 이끌고 가는 방식이어야 한다. 보건소, 행정복지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복지관, 병원, 지역 주민 조직이 연결되어 디지털 사용이 어려운 시민을 발견하고, 설명하고, 동행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대면 창구와 전화 상담은 낡은 방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으로 남은 안전망일 수 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한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모두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앱 하나로 진료를 예약하지만, 어떤 사람은 작은 화면 앞에서 몇 번이고 망설인다. 어떤 사람은 QR코드를 찍고 곧바로 상담을 신청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문 앞에서 돌아선다. 예전의 전화 한 통이 느렸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이었듯, 돌봄의 기술도 결국 사람을 향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는 빠른 사람만 더 빨리 가는 사회가 아니라 느린 사람도 함께 갈 수 있는 사회이다. 디지털 돌봄의 미래는 더 많은 기술을 갖추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더 잘 돌볼 수 있도록 돕는 방향이어야 한다. 돌봄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편리함의 속도에 가려진 사람들을 잊지 않을 때, 디지털 돌봄은 비로소 따뜻한 돌봄이 될 수 있다.
원문기사 보기 : [광주라운지]디지털 돌봄 그늘, 편리함 뒤에 남겨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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