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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가 살아나는 ‘동네배당’
주민자치가 우리 삶 속에서 체감되지 못하고 겉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주민이 ‘의견’은 낼 수 있지만, 정작 그 의견을 실행할 ‘자원(예산, 공간)’을 스스로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회의는 매번 반복되지만 결정권은 멀리 있고, 참여하는 사람은 늘 소수에 고정되어 있다. 공들여 낸 성과마저 행정기관 사업의 하청처럼 느껴질 때 주민자치는 쉽게 지치고 동력을 잃는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여를 독려하는 구호가 아니라, 주민이 직접 동네를 운영할 수 있게 만드는 실질적인 ‘동네의 엔진’이다. 필자는 그 엔진을 ‘주민자치 배당’, 즉 ‘동네배당’이라 부르고 싶다.
동네배당의 원리는 명쾌하다. 광주 곳곳의 공공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주민자치와 연결해, 주민이 동네 활동에 참여한 만큼 지역화폐나 포인트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활용 가능한 공공자산이 많다. 공공건물 옥상의 태양광 발전 시설, 스마트 주차장, 도시재생 사업으로 마련된 임대상가, 공유자전거와 같은 모빌리티, 그리고 지역의 다양한 공연과 콘텐츠 등이 그것이다. 핵심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진 공공의 수익을 모아 주민자치의 재원으로 전환하는 ‘설계의 변화’에 있다. 이렇게 모인 수익을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로 돌려주면, 자본은 동네 밖으로 새지 않고 골목가게와 시장에 다시 쓰여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미 서울시는 2015년 태양광 발전사업을 시민펀드와 연결해 수익을 공유하는 모델을 선보였고, 미국에서는 저소득 주민이 소액으로 지역 상업부동산 지분을 쌓아 임대수익을 배당받는 CIT(Community Investment Trust) 모델이 성공적으로 운영된 바 있다. 이들 모델의 핵심은 ‘큰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작은 참여가 자산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광주형 동네배당 역시 같은 원리다. 내가 낸 시간과 노력이 동네의 자산을 키우고, 그 결실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동네배당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주민자치의 본질이 바뀐다. 주민총회에서 늘 나오던 질문이 “이것 좀 해달라”는 민원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때 주민자치회가 다루는 의제는 자연스럽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우리 동네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공공자산은 무엇인가. 둘째, 그 수익을 어디에 먼저 쓸 것인가(돌봄, 안전, 환경, 청년 지원 등). 셋째, 참여와 배당의 기준을 어떻게 공정하게 만들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을 주민이 직접 토론하고 결정하는 순간, 주민자치는 단순한 ‘회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운영’이자 ‘자치’가 된다.
참여 방식 또한 생활 속으로 깊숙이 내려온다. 마을 청소, 안전 순찰, 이웃 돌봄, 탄소 절감 실천, 지역 가게 이용 같은 활동이 포인트로 쌓이고, 이것이 동네배당으로 돌아오면 주민자치는 고단한 봉사가 아니라 즐거운 ‘생활의 선택’이 된다. 특히 직장인이나 청년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짧고 자주 할 수 있는 참여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몸이 불편하거나 이동이 어려운 주민이 소외되지 않도록 안부 확인 같은 활동을 참여로 인정하거나 기본 몫을 보장하는 등 ‘함께할 수 있는 규칙’을 세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결국 동네배당의 성패는 돈의 액수보다 그 과정의 공정함과 투명성에 달려 있다.
복잡하게 시작할 필요도 없다. 우리 동네 공공자산과 수익원을 파악해 ‘자산지도’를 그리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태양광이나 주차장처럼 수익 모델이 확실한 분야부터 작게 실험해보고, 그 성공의 경험을 모빌리티나 문화 분야로 넓혀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첫 성공의 체감이다. “내가 참여하니 동네가 좋아지고, 그 결과가 내 삶의 혜택으로 돌아왔다”는 실질적인 경험이야말로 주민자치를 지속시키는 가장 큰 힘이 된다. 이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될수록 주민 간의 불신은 줄고 참여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주민자치를 단순한 ‘참여 행사’가 아니라 ‘자기 결정의 시스템’으로 만드는 일이다. 광주가 그 길의 선두에 설 수 있다. 동네가 스스로 벌고 스스로 나누는 구조를 갖출 때, 주민자치는 비로소 강력한 힘을 얻는다. 동네배당은 거창한 정치적 논쟁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주민이 스스로 재원을 만들고 그 쓰임새를 결정하는 경험을 쌓는 것, 그 자체가 살아있는 주민자치의 학교이자 우리 도시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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