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을 강조하는 송원대학교 신문방송국

PSY '강남스타일' 비판적으로 다시 읽기조회수 1574
관리자 (chambit)2012.10.30 10:34

지난 10월 4일 가수 PSY(이하 싸이)가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무료 콘서트를 열었다. 이날 공연은 유튜브와 유스트림 채널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10만 관중이 한자리에 모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축구 A매치 응원 현장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이라고 한다.

가수 싸이의 노래가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다. 싸이의 6집 음반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 속에서 ‘한국 최초’라는 놀라운 수식어를 연달아 다는 힘찬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싸이는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빌보드 차트 2위의 자리에 올랐다. 이는 아시아인으로는 2번째 달성하는 위업이다. 또한 ‘강남스타일’은 영국 음반 차트에서 한국 음반 최초로 1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4억 건을 돌파하였다. 가장 많이 본 동영상 순위 탑 10에 입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거침없는 상승세로 최강자의 자리까지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의 ‘강남스타일’ 패러디 동영상들이 활발하게 재생산되고 있다. 가히 ‘싸이월드’이다. 싸이의 거침없는 활동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까지 높여주고 있다. 백인 주류 사회에 침투한 한국인의 저력에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에 극대화’라고 비판받을 수 있는 지점이지만, 한국인이 그동안 넘보지 못했던 미국의 정상 자리 등극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거기에 ‘강남스타일’에 등장하는 ‘섹시 레이디’와 ‘스타일’이라는 단어를 제외한 모든 노랫말이 우리말이라는 사실은 한류의 해외 진출을 더욱 고무적으로 만든다.

우리의 문화가 세계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사실이 우리의 어깨를 더욱 으쓱이게 한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애국심과 충성심으로 싸이의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본다는 농담까지 돌고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맹목적으로 그의 음악을 향유하는 것이 아닌, 분석적으로 그의 음악을 파헤쳐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싸이의 음악에는 클럽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클럽 문화는 성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음악이다. 그래서 노랫말을 한 구절씩 분석하다 보면, 그 안에 깔려 있는 직설적인 클럽 담론을 만나게 된다. 단순히 ‘강남’으로 상징화되는 자본주의 계급에 대한 비판이 노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강남스타일’ 인기의 일등 공신인 ‘말춤’ 역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중독성이 강한 재미있는 동작이라고 무조건 모방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는 ‘말춤’은 굉장히 선정적인 춤이다. 말은 성적상징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말을 타는 것’은 ‘성행위’에 대한 비유로 향유되어왔다. 이러한 비유는 문학작품이나 영화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유명한 여자 가수가 싸이의 다리 아래에서 춤을 추는 동작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특히나 등장하는 여자가수가 ‘트러블 메이커’라는 노래로 선정적인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전적이 있다는 점에서 이는 더 큰 비판의 여지를 남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중독성 있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멜로디 안에 숨겨져 있는 선정성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선정적인 코드가 ‘코믹’을 만나며 평범한 것으로 눈속임하고 있는 현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알고 있다면 유치원을 비롯한 초•중•고등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무분별하게 향유되고 있는 ‘강남스타일’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된다. 물론 대중문화, 대중음악인 싸이의 ‘강남스타일’ 굳이 심각하게 받아드릴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견들도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더는 싸이의 음악을 그저 B급 문화라고 치부하며 소수 음악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현재 ‘강남스타일’은 수면 위로 떠올라, 보다 많은 대중이 함께 듣고 향유하는 영향력 있는 음악이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 무분별한 수용은 지양하고 보다 비판적 보기를 시도할 때, 더 큰 문화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겨운 기자 mini0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