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을 강조하는 송원대학교 신문방송국

<383> 일본불매운동 일어난 이유와 근황조회수 549
신문방송국 (swnews)2019.10.02 15:13
첨부파일1
일본불매운동 일어난 이유와 근황 사진.jpg (19 KB) 다운로드 248

일본불매운동이 일어난 이유 ?

 

이번 이야기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제징용을 당했던 할아버지 두 분(여운택, 신천수)이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었다. ‘일본제철’에게 강제징용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밀린 임금도 돌려달라고 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003년에 패소하고 말았다. 일본 법원은 전쟁 전 일본제철과 현재의 일본제철은 다르니 책임질 의무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1965년 한일 양국이 맺은 '청구권협정'도 발목을 잡았다. 한일 양국과 국민들 재산, 권리와 이익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단 내용이 담겨 있었고, 거기다 일본은 한국 정부에 무상 3억달러와 유상 2억달러의 공공 차관(10년)을 제공했었다. 그걸로 다 끝났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다시 소송을 냈다. 그렇게 다시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다. 장장 13년8개월이 흘러 끝내 승소 판결을 얻게 되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30일 "일본제철은 피해자들을 강제 동원해 가혹 행위를 했다"며 피해자들에 1명당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일본제철 가마이시제철소(일본제철)에서 임금 한 푼 못 받고 열악한 환경에서 노역을 했다. 1944년 태평양전쟁 땐 일본에 징병되서 외국 땅을 지키는 역할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선 이러한 가혹 행위에 대한 피해자들 개개인의 배상청구권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봤다. 어렵게 승소했지만, 그 사이 피해를 입은 할아버지 네 분 중 세 분이 돌아가셨다. 홀로 남은 건 이춘식 할아버지만 남게 되었다. 이렇게 승소로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으나 사실은 시작이었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에 어긋난다"며 대법원 판결에 반발했다.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 분쟁을 해결하자고 요청하더니, 중재위원회를 열자고 했다. 그리고 7월1일, 문제의 '수출 규제'가 시작됐다. 한국 산업의 최정점인 반도체를 노렸다. 여기에 필요한 원료 세 가지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했다. '경제 전쟁' 선포였다. 이 것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본불매운동의 근본적인 이유이다.

    


 

일본 불매운동의 현재 근황은?

 

여름을 맞아 일본으로 여행을 가려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일본행티켓을 취소, 환불하고 인증하는 사진들이 늘어났다. 심지어 그 것을 인터넷에 게시하며 일본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모습을 인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그들을 위해 일부 여행사는 일본행티켓을 취소한 사람들에게 혜택까지 주는 등 적극적인 불매운동이 이뤄지고 있다. 거기다 현재 일본 기업으로 알려져있던 유니클로, ABC마트, 무지는 판매율이 급격히 하락하게 된 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다. 거기다 일본 맥주인 아사히 맥주는 우리나라에서 구매율이 꽤나 높았던 맥주임에도 불매운동으로 인해 판매율이 현저히 낮아진 모습을 보인다. 지난 몇 년간 불매운동은 수없이 일어났지만 한 번도 제대로 시행되어 본 적이 없었기에 이렇게 나라 전체가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을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심지어 일본기업이나 일본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을 정리해놓은 어플리케이션, 사이트가 만들어지는 상황이기에 일본 물건을 팔던 상인들조차 가게에서 일본 것들을 판매하지 않기 시작했다. 실제로 주변에서 맛집으로 꽤나 유명했던 일식집들조차도 피해를 피할 순 없었다. 실제로 블로그나 카페에 일본 불매운동에 대한 인증샷을 올리고 있는 추세인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파급력은 우리나라에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불매운동이 용두사미로 쉽게 끝날 것이라 예측했던 일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생각 이상의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번 불매운동을 참여한 이들은 모두 “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 ” 라는 문구를 통해 이번 불매운동이 단기간에 일어난 신기루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불매운동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어가는 시점이지만 아직도 뜨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