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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을 강조하는 송원대학교 신문방송국

우리말에 대한 예의사설조회수 4188
관리자 (chambit)2014.08.01 09:09

요즘 우리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의리’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화제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방송에서 특정회사의 음료광고용 멘트로 쓰이다가 급기야는 정치판으로, 최근에는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특정선수 기용문제와 관련하여 축구계에까지 비화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리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도덕과 지혜의 깊이를 재삼 다시 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치 저잣거리의 일개 조폭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가볍고 얄팍한 의미에 가깝게 이해하고 쓰고 있는 느낌이 들어 얼마간 찜찜한 생각이 들어서다.

한국어사전을 보면 의리란 ①사람으로서 지킬 바른 도리 ②신의를 지켜야 할 교제상의 도리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위에서 말한 여러 경우에는 의리라는 단어의 쓰임이 그리 적절하지도, 유효하지도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사회적 관심이나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특정한 말이나 단어의 해석을 사전적 의미나 자구적으로만 보는 관점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원래 인간의 사유의 원천은 언어이고 더 나아가 그 사유는 제한적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언어세계를 깊이 있고 폭넓게 보아야만 우리의 사고의 폭과 깊이도 보장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하고 그 기본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사회적인 합의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말이나 단어가 문제가 되었을 때 그 기본은 한국어사전이 되는 것이고 서로간의 오해의 소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방송이나 지면, 즉 언론에서 벌어지는 오보(誤報)나 소비자인 시청자와 독자들이 벌이는 오독(誤讀)도 사실은 말(단어)의 선택이 잘못되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이나 진실을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왜곡시키는 보도를 가리켜 오보라고 말하는데 많은 경우 교묘한 말이나 단어의 선택이 관건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건이나 사태에 적합한 단어가 선택되지 못할 때 보통의 시민들은 오독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보자. 터프가이의 이미지를 풍기는 어느 남자 배우가 티브이음료광고를 하면서 의리라는 단어를 외친다.

그 특정음료광고를 만든 사람들의 숨은 의도까지 파악할 방법은 없지만 그 음료와 순수한 사유의 덩어리인 의리라는 단어 사이에는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 다음 정치판으로 들어가 보자. 어느 정당 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이 펼치는 선거운동 중에 특정 후보가 내건 구호의 하나로 의리라는 단어를 볼 수 있다. 그 후보는 의리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해석하고 표를 부탁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에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한국정치의 의식수준에서 해석하고 접근한다면 그 후보는 프레임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관점에서 의리란 무엇인가. 첫째도 둘째도 민생을 살피는 것이고 자나 깨나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아직껏 내 기억으로는 국민을 향해서 그런 의리를 지키겠다는 정치인을 본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월드컵 감독에게 비난의 화살로 날려 보냈던 ‘의리축구’에서 의리를 보자. 만에 하나 홍 감독의 전술이 실패하지 않고 적중했거나 논란의 한 중앙에 섰던 특정선수가 팬들의 기대를 충족할 만큼 활약을 했다면 이런 논란거리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감독의 재량에 시비를 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팬들이나 국민들의 우리의 축구에 대한 안목이나 대표선수들 개개인의 자질과 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는 무시해서도 안될 만큼 성숙되었다고도 봐야 한다. 작든 크든 조직의 생명은 상호간의 신뢰인 것은 분명하다. 흔히 우리사회에서는 학연이나 지연, 개인적인 인연에 충실하면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의리’라는 우리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