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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인 미래도시에 대한 상상시론조회수 5067
관리자 (chambit)2013.11.18 11:52

안상엽/건축공학과 교수


최근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환경 친화를 내세우지 않으면 명함을 내놓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환경 친화와 환경보존은 어느 분야에서든 공인이 자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서 꼭 갖추어야 하는 필수조건과 같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적인 입장을 복합적으로 또는 더 장기적으로 사고하기보다, 무조건 자연을 사수하는 시도들이 사방에 가득 채워져 있다. 

도시 전문가들 속에서도 환경 전문가들 속에서도 건축전문가들은 인간 환경을 망치는 죄인일 뿐이다. 그런데 건축이 단순히 자연 환경과 도시 환경의 적일 뿐 이라는 이러한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가 더 깊이 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나의 개인적인 그리고 건축적인 미래 도시에 대한 상상이다. 과거는 지면에 연연하였던 문명 지구의 표면인 대지는 지금까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근본적인 바탕이 되어 왔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주거양식은 대지에 순응하는 형식이었고, 아무리 주어지는 지형이 인간에게 비협조적인 형태라 하여도 못 생긴 대로 그 지면에 붙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나 항구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딱지 주거나 달동네들에서 보는 것처럼 과거는 인간이 철저히 지면에 순응하며 살아온 시간이었다. 현재는 지면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 지면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달동네나 단독주택들이 재개발 되는 경우에 기존하였던 대지의 형상은 사라지고, 전혀 다른 거대 평활지들이 형성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단독 주택들의 상태로 인류문명이 유지 가능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볼 때 인류가 필요로 하는 내부 공간 면적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한 집단의 생활수준이 계속 높아지면서 같은 수의 인간이 필요로 하는 주거 공간의 총 부피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1인당 필요 공간 면적에 더해서 여유 공간의 면적도, 가구의 규모도, 장식들도, 외부 공간, 주차장, 운동시설, 설비 공간 등 미래에는 더 많은 추가 공간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획일적인 기능분리로 인하여 삭막해진 우리의 주거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1인당 필요 공간 면적을 실내외로 상승시키며 우리들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런데 담고자 하는 음식의 양이 늘어나면 그릇의 규모도 커져야 하듯이, 인간이 요구하는 공간의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그 전체 규모도 확대되어야 하는데 그 규모의 확장을 수평 방향으로만 일어나도록 한다면, 우리나라와 같이 제한된 국토를 가진 나라에서는 남아나는 자연이 없을 것이다. 미래는 지면으로부터 자유 엘리베이터와 고층건물구조가 발명되면서 인간은 지면에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한지 한 세기가 흘렀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높은 건물로 올라가는 것에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인간이 지면으로부터 충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고층건물을 확보한다 하여도, 그 공간들은 아직도 지면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 모든 도로뿐만 아니라 건물에서 건물로의 소통은 여전히 지면에 머물러 있고, 그 주된 줄기에서 엘리베이터들이 사람을 수직으로 분산시켜주는 작은 가지들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고층의 공간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먼저 높이에 대한 거부감도 있지만, 엘리베이터라는 작은 수직통로를 통해서만 지면이라는 주된 줄기와 연결되는 이유에서이다. 각자의 주거 공간은 그 가지 끝에 달린 열매와 같은 벌집 또는 감옥인 셈이다.

이제는 고층건물이 아닌 고층도시로 미래의 포도송이와 같은 주거 양식에서는 먼저 수직 동선이 많은 잔가지를 가진 줄기의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줄기와 가지들의 열매 하나하나가 여유로운 규모로 다양하게 자라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고층에서 엘리베이터만을 통해서 수직이동을 하여 지층에서만 외부로 나갈 수 있는 형식을 탈피하여, 다양한 높이의 인공대지로 수평 이동을 하여 외부로 출입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주거가 형성되어야 할 것으로 상상해 본다. 당분간은 지면에 일련의 막대기가 심어지는 건물 형식의 주거를 유지하겠지만, 앞으로는 입체 거미줄과 같이 아니면 수세미의 구조와 같이 지면 상부에서 건물들끼리 복잡하게 얽어매지는 미래 도시가 눈에 선하다.

100층이나 200층에서도 지면에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높이의 도로들과 정원, 가게, 학교, 관공서 등의 생활에 필요한 도시 시설들이 있고 많은 이웃사람들이 존재하며 빛을 유도하는 여러 장비들에 의해서 자연채광도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20층보다 훨씬 바람직한 주거 환경이 될 것이다. 높이에 대한 문제점은 각자가 적응하여야 할 사안으로 생각되며, 우리가 고층건물에 대한 생소함을 극복하였듯이 멀리 내려다보는 경험도 우리 일상의 한 부분으로 충분히 흡수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현재 익숙하지 않다 하여 무조건 거부하는 경직된 사고의 인간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인간의 수가 많았기에 지금까지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물론 지구 전체가 다층화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거대도시 전체가 다 고층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고층에서 걸어 나갈 수 있는 보행 영역 정도만 형성된다 하여도 현재의 우리가 고층에 갖는 고정관념이 바뀌리라 생각된다. 일부 집중지역에서 다층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며, 특히 교통량이 집중되는 곳에서 도로가 다층화 또는 고층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면에 종속되어 오면서, 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한 채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살아왔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구조체의 발명과 새로운 미래의 도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도시에서 살고 싶은 것도 아니며, 그런 도시가 꼭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최소한 그런 도시를 상상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사고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