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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도서관장 이영일 교수 광주매일 기고조회수 546
박지호2016.09.0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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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사랑, 구월

 

송원대 중앙도서관장 이영일 교수

유난히 더웠던 날씨가 한 풀 꺾이고 예고도 없이 불쑥 가을이 찾아 왔다.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붉은 하늘은 거짓말같이 파랗게 변했고 공기는 스산해졌다. 그렇게 가을의 전령사 구월의 문은 활짝 열려서 서로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용서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수평선 위에 바닷새 한 마리가 노을에 불타고 있는 것처럼 깊고 진해짐을 보면서 젊은 날의 사랑 못지않게 황혼까지 동행하는 사랑이라면 얼마나 멋있을까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숨이 멎을 것처럼 아름다운 노을 위에 검은 구름이 마치 육지처럼 보이고 그 주위에 안개 낀 바다가 호수 같이 느껴진다. 찬란한 노을처럼 우리 모두의 가슴마다 사랑이란 낱말을 하나씩 진하게 새기면 참 좋겠다. 가슴 절절히 사랑하고 싶은 달이 구월이기에…

 

가을이 오면 뜨락에 낙엽이 하나 둘 바람에 불려 간다. 방랑과 청춘과 사랑도 때가 있고 끝이 있듯이 낙엽은 궤도도 없이 바람결을 따라서 헤매다 결국 숲속이나 늪 속에 비로소 멈춘다. 단풍이 가을의 채색이라면 무등산의 백마능선 일대의 억새는 가을의 판타지다. 단풍이 드넓은 산에 수채화를 뿌려 놓은 듯 울긋불긋한 빛깔을 자랑한다면, 억새는 은색의 향연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람결에 흩날리며 황금빛으로 변하는 흔들림의 미학이다. 가을 들판 한쪽에선 맑고 파란 잉크 빛 하늘을 등지고 이른 벼를 베는 농부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이며, 산자락 언덕 밭에 심은 고구마는 아직은 때가 아닌지 조그마한 몸통을 밭고랑에 숨긴 채 열심히 알을 키우고 있다. 창너머 보이는 무등산의 색깔이 조금씩 변해 감을 느끼며 더 이상 단풍스케치 여행을 미룰 수 없어 산행을 시작한다.

 

무등산에 오르면 나뭇잎들이 터널을 짓고 기나긴 굴 따라 관통하는 기차처럼 느껴지며 걸음걸이마저도 발레하는 것 같이 이파리들도 춤을 춘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에 가을이 오고 낙엽이 뒹구는 소리에 가을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포근한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구월 무등산에는 말갛게 다가오는 가을의 향기에 풀벌레 울음소리와 옛집의 구슬픈 향수가 밀려온다. 나는 진한 그리움으로 돌아서 가던 길을 멈추고 능선을 감싼 억새 닮은 여린 미소를 띤 채 높고 파란 하늘을 향한 환한 모습으로 가을사랑이 가득한 잉크 빛 하늘을 본다. 맑고 깨끗한 파란빛을 보노라면 내 마음도 어느새 빛고을을 닮아간다. 구월의 무등산 길을 걷다보면 어느덧 내 마음도 알알이 영글어 고개를 숙인다.

 

구월은 나무와 풀들에게 열매와 씨앗을 만들어 주어 자연의 풍성함과 마음의 여유로움을 느끼게 하며 그 동안 잊고 지냈던 가슴속 감성을 되찾게 해주는 계절이다. 가로수 그늘이 드리워진 돌담길을 걷다보면 한기가 조금씩 느껴지는 가을 저녁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거닐면 더없이 따뜻하기만 하다. 낙엽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질이며 은은한 가로등 조명 덕분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더 어여쁘게 보인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에 가을이 더 깊어가고 낙엽이 뒹구는 소리에 가을은 또 갈 것이다. 가을이 오면 손으로 꾹꾹 눌러쓴 한통의 편지를 쓰고 싶어지고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따라 걷노라면 저절로 가을 노래를 부르게 된다. 탐스럽게 핀 국화꽃 향기는 우리들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며 보고 싶은 사람, 잊고 지낸 사람, 감사한 사람, 그리고 한때는 미워하기도 했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구월은 꽉 찬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인심과 인정이 샘솟아 고향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지라도 슬며시 옛 추억과 동심을 불러내어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 수 있는 추석이 있는 달이다. 황금물결 일렁이는 가을의 들녘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설레임으로 고향 친구와 친지들을 만나보고 모두가 어우러져 까르르 웃음 짓는 희망과 기쁨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그런 달이다. 그러나 가을은 그냥 오지 않고 색동옷을 입고 온다. 허황된 색깔을 버리고 속이 꽉 찬 과일처럼 성숙한 색깔을 지녀야 한다. 자칫 삶은 허망한 것이고 바람 같은 것이라는 느낌을 주게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별것이 아닌 삶을 살기 위해 사람들은 사람이기를 버린다는 것을 경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