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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경영학과 이영일교수 광주매일 기고조회수 3309
박지호2017.07.0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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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에게 길을 묻다

 

송원대학교 철도경영학과 이영일교수

 

이제 여름이 본격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집 앞 나무들도 너나없이 푸르름을 띠고 서로 자기의 옷 색깔을 자랑한다. 반가운 임이 오는 것처럼 부드럽게 맞아들이고 잎가에 입맞춤을 한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파도는 알 것 같아 종강을 한 즉시 제주도에 갔다. 하늘은 까만 돌이든 푸른 풀이든 비에 젖은 발자국이든 이 섬을 위해 마련해 주었기에 기말고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오기 전에 제주바다를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서둘렀다. 여행은 지친 영혼과 육체를 회복하기 위한 시간이다. 특히 자전거 여행(bike trip)은 흡사 인생과 같기에 더욱더 매력이 있다. 쉼 없이 페달을 돌리지 않으면 기우뚱거리고 넘어지니까. 두 발로 바퀴를 천천히 굴려가며 안장 위에서 어디선가 감미롭게 불어오는 미풍을 온 몸으로 느낀다. 변화의 바람(wind of change)도 피부로 감지해 본다. 때론 진정한 여행은 눈이나 귀가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이유이다. “그래, 인생 다시 한 번 힘차게 달려보는 거다!”라면서 그 섬에 갔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모두 버리러 갔다. 제주에서는 파도가 강의를 하고 내가 수업을 받는다. 해질녘 바닷가에 서면 흘러간 세월들이 파도를 타고 노을 속으로 사라진다. 내가 바다에 가는 것은 바로 나를 만나러 간 것이다. 고독을 만나러 간 것이다. 까맣게 타버린 섬이 다시 촛대를 일으켜 활활 타는 모습을 보기 위해 간 것이다. 더 나아가 자유를 느끼기 위해 간 것이다.

 

가끔 나는 왜 여행을 할까? 라고 자문해 본다. 그것은 아마 진짜(authenticity)에 대한 근원적 욕구 때문일 것이다. 빼어난 경관은 물론이고 여행 중에 만나는 모든 숙소와 그 곳의 식사도 은근히 기대되는 즐거움도 있다. 나는 주로 동행하지 않고 나 홀로 떠난다. 한때 어색해 보이기까지 했던 나 홀로 여행,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굳어졌다. 혼자서도 여행을 잘 할 수 있는 내공을 기른 것이다. 특히 바다를 빙 둘러싼 둘레 길에서 파도가 쉬어가라 손짓하는 모습을 그릴 때 더욱 가고 싶어진다. 바다가 주는 시원함과 상쾌함은 모든 것 다 버리거나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은 포근함에 난 바다를 찾는다. 바다로 가자 파도가 섬의 옆구리를 자꾸 때려 쳐 만든 절벽에 새끼를 기르는 괭이갈매기가 오라 손짓하는 바다로 가자.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한 바다로 가자. 나는 종종 푸른 바다를 보고 싶어, 갈매기 따라 날고 싶어, 나를 씻어내고 싶어 섬에 간다. 해변에 가면 누구나 다 알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가면 모르는 사람이라 딴 짓 한다. “이쪽을 향해 오는 사람은/ 왠지 낯이 익은 사람/ 알 것 같은 모습의 사람/ 점점 가까워지니/ 전혀 보지 못한 사람/ 나는 딴 데를 보고 모래를 뿌린다.”라고 아름답고 영롱한 시를 쓰는 정지용 시인은 해변을 이같이 그려냈다. 그러나 옛날은 가고 그리움만 남은 빈바다는 은빛 햇살만 출렁거린다. 하지만 삶이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주어진 삶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는 파도에게 감사한다.

 

이박 삼일 간 자전거 여행 중에 이튼 날 머물렀던 성삼 일출봉 앞 펜션에서의 하루 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창문 바로 앞에 너른 바다와 밤새도록 쉬지 않고 힘차게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와 그 소리는 꿈엔들 잊을 수 없다.

 

전날 나는 하루 동안 우의를 걸치고 해안 빗길을 아홉 시간 넘게 라이딩(bike riding)한 몸이기에 꿀잠 들며 그 바다 그 물소리를 온밤에 들을 수 있었다. 이런 파도는 ‘나만 힘든 게 아니다’라며 내 삶의 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 난관에 직면할 땐 늘 해결해 주는 지혜를 던져준다. “나를 잃고 헤매 일 때/ 침묵의 노래 부르고 싶을 때/ 제주 바다에 가 보자// 우리 삶이/ 사철 푸르게/ 제주 바다로 달려가 보자// 지금까지 사는 동안/ 쏟아놓지 못했던 얘기들을/ 바람과 파도가 대신해 줄 것이다.”라는 자작시를 통해서 마음의 위로를 삼는다. 난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고서 이젠 염려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으며 희망차게 살아가도록 한바다의 물결 따라 온 생활 맞잡고 그 물결 던지며 노래할 것이라고 외쳐본다. 이 곳 잠 설친 수국 꽃잎에 눈물방울이 푸른 아침은 다시 오고 석양은 저도 캄캄한 세상 바닥에 푸른 길을 가르쳐 주는 거센 파도에게 길을 묻고 나는 일상의 나라로 다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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