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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의 논리’와 설득의 미학시론조회수 1796
관리자 (chambit)2014.11.19 11:34

안상엽 / 건축공학과 교수


말은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 일이다. 밥을 먹거나 공기를 마시듯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던 말에 대해서 요즘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의 전성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로가 막혀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풍성한 말 잔치가 이 땅에서 펼쳐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맞이한 현실은 당초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말 잘하는 것이 요즘처럼 대접을 받은 시기는 우리 역사를 통해서 아마 없었을 것이다. 말을 억제하고 감추고 침묵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전달의 효율성보다는 말의 권위를 따졌고, 말로 인해서 관계를 만들기보다는 말을 통하여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았다.


화려한 말 속의 오류

그러나 이제는 사회를 억누르던 말의 권위주의 문화가 퇴조되고 새로운 가치관이 싹트고 있다. 걸출한 커뮤니케이터들이 정치무대의 중심에 등장했고, 이들의 말 한 마디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화려한 말을 구사하는 언어 조련사들이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러한 시대변화는 대학에서도 금방 느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과목 수강생이 해마다 늘고 있고 대학마다 앞 다투어 스피치와 토론 같은 과목을 신설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물론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바람직한 언어문화가 사회 저변에 구축되기 전에 갑자기 한꺼번에 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말에 굶주린 젊은 세대에게 올바른 말의 문화를 가르쳐 주고 싶은 욕심에 나 스스로도 강의실에서 잔소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원래 화려한 언어구사는 서양의 커뮤니케이션 모델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아크로폴리스의 토론을 주도했던 말의 연금술사 소피스트들이 그 원조다. 그러나 말의 논리에 내포되어 있는 오류의 가능성을 점검해 봐야 한다. 글과 달라서 말은 임기응변의 논리를 중시하고 감성적 호소력이 강하다. 잠시 듣고 잊어버리는 ‘15초의 논리’라고 얘기한다. 인간 기억의 한계는 15초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짧은 순간의 논리만 세우면 말은 늘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뜻이다.

말 때문에 요즘 우리 사회에는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 누구든지 아무렇게나 함부로 내뱉은 말들이 인터넷을 채우고 방송에 넘쳐난다. 오해를 풀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말이 오히려 남을 헐뜯고 갈등을 부추기는 데 한몫을 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말을 금기시 해 왔다. 꾸민 말에는 인(仁)이 깃들기 어렵다고 가르쳤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신언서판(身言書判)’즉 말을 몸가짐이나 신체 용모 뒤에 두었다. 행동과 행실이 말에 앞서야 한다는 뜻이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달변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눌변을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르침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말로 인해서 오해가 생기고 당쟁이 싹트고 온갖 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말에 대한 가치관은 말의 신중함으로 요약 된다. 이것은 말을 적게 함으로써 불만을 표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권위에 대한 도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측면이 있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말하는 교육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었다. 말이 통하는 길이 제도적으로 봉쇄당해 있었고 말하는 예절을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었다.

그러던 말이 이제는 봇물이 터진 것처럼 넘쳐난다. 갈수록 말이 많아지고 거칠어지고 자극적으로 변한다. ‘과언(過言)’의 시대이다. 차라리 말이 모자랐던 시절이 가끔은 그리울 적도 있다. 우리는 말을 이용한 가학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갈등과 대립보다는 통합과 타협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과격하고 지나친 말은 시대의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기 말을 하기에 앞서서 남의 말을 먼저 듣는 언어예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말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여 자신의 직장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


설득의 미학

주변에서 보면 자신이 하는 말이나 제안에 대해 듣는 사람 누구나 귀 기울이게 하는 능력을 갖춘 이가 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매력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은 어쩌면 타고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고나지 못했더라도 몇 가지 요소를 유념하고 확실히 해 둔다면 상대방에게 자신이 말하는 바를 전달해 그가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프로가 되는 일은 지금부터다.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차근차근,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설득의 법칙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보자. 조금만 신경 쓰면 우리는 말로 설득의 귀재가 될 수 있다.

행복한 인생은 누구나 원하는 삶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보내려면 ‘늘어나는 수입’ ‘재미있는 일’ ‘충실한 개인 생활’ 등 3가지를 동시에 얻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 중 2가지가 직장과 연관되어 있다. 즉 우리는 직장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대부분 결정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작장생활의 행복, 이를 위해 필요한 능력 중의 하나가 바로 ‘설득력’이다. 설득력은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상대방을 움직이도록 하는 힘’을 말한다. 이것이 있다면 직장의 모든 일이 내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져 재미가 있고 성취감을 느끼게 되지만, 설득이 잘 안되면 재미가 없어지고 말 그대로 직장생활이 힘들어진다.

그 중에서도 직장 상사에게 자신의 업무에 관한 것을 설득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적어도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본인이 직접 처리하고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므로 상사에게 제안하며 납득시켜야만 진행해 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설득력은 몇 가지 요소가 모여야 효과를 발휘한다.

첫째, 상대를 움직이려는 목표, 즉 자신의 의사가 확실해야 한다. 내가 설득하고자 하는 내용, 목표, 결과가 무엇인가. 설득이라는 건 내가 주장하는 방안대로 시행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를 공감시키는 것이다.

둘째, 설득력이란 남을 움직이게 하는 테크닉이므로 설득하는 사람의 기백이나 열성, 끈기 등 인간적 요소에 의해 결과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자신의 열성과 기백을 보여야만 제대로 설득하고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설득의 기술이다. 뭔가를 부탁할 때는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하며, 무엇부터 시작해서 어떤 순서로 설득할 것인지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을 위해서 상대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득력은 자신의 평소 행동에 달려 있기 때문에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러한 설득의 기술들을 익히기 위해서 우리 학생들은 학창시절 동안 부단히 노력하여야 할 것이고 말의 오류를 범하지 않고 설득의 기술들이 몸에 베일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