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을 강조하는 송원대학교 신문방송국

억새와 갈대시론조회수 3215
관리자 (chambit)2013.10.21 13:54

김병인 /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바야흐로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염과 폭우로 얼룩진 산야에는 결실들이 술술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에메랄드 하늘을 머리에 인 자연은 가을 특유의 빛깔로 변해간다. 아! 한참 햇볕을 쬐어도 싫지 않고 시나브로 살이 찔 것만 같은 계절이구나!

이러한 때 묵묵히 가을을 기다린 외떡잎식물들이 있다. 산과 들에 자라는 억새와 호수 주변이나 강가에 군락을 이룬 갈대가 그것이다. 헌칠하게 자란 키가 바람이 부는 대로 간들거리면서 여러 개의 길쭉한 이삭을 머리카락인 양 펄럭인다. 그때마다 사스락사스락 내는 소리가 마치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그들의 생김새는 어슷비슷하나 유심히 보면 생태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억새의 경우, 뿌리줄기가 모여 나고 굵으며 원기둥 모양이다. 줄기는 여러 개인데, 가운데 줄기는 희고 굵다. 잎의 뒷면은 녹색 또는 흰빛을 띠고 있다. 갈대의 경우, 뿌리줄기의 마디에서 많은 황색의 수염뿌리가 난다. 이삭은 빗자루를 만들고 이삭의 털은 솜 대용으로 사용한다.

나는 주말마다 무등산을 오르면서 질펀하게 펼쳐진 억새를 대한다. 나를 볼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한다. 하루쯤 웃음만 보내어도 좋으련마는 어김없이 그러한다. 하면, 친구라도 만난 듯 나의 입이 벙긋 벌어진다. 나도 모르게 우리 사이에 교감이 된 것이다.

그렇게 빈번하게 마주치면서 짧은 시간의 사색이 주어졌다. 

첫째는 억새의 겸손함이다. 비단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그리고 억새들끼리 주고받는 인사가 공손하고 정답다. 조금도 허식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다. 더군다나 우리 인간세계에 만연하는 교만이나 과시 따위는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억새가 나를 깨우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이 같은 상상을 한다. 이때만은 억새가 하찮은 식물이 아니요, 나에게 스승처럼 여겨진다. 나는 억새에게서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배운 것이다. 머릿속에 잠재해 있는 상식이 행동으로 드러나야 겸손의 가치가 있음이다.

둘째는 억새의 일편단심이다. 억새는 산들바람은 물론이고 어지간히 센 바람에도 꺾이는 법이 없다. 유심히 보라. 제아무리 크게 휘어졌다가도 이내 제자리로 돌아온다. 따라서 휘어지는 상태를 두고 바람에 쉽사리 넘어간다고 속단하여, 허약한 심성에 빗대어서는 안 된다. 

나는 오히려 억새의 유연한 적응력이 돋보였다. 자연의 어떤 역경도 슬기롭게 이겨내는 재치를 가지고 있다. 억새에게는 허약함도 굴복도 아닌 의연함과 평상심이 있는 것이다. 저 고려조 말기에 이방원이 《하여가(何如歌)》를 부르자 술잔을 비우며 《단심가(丹心歌)》를 불렀던 정몽주의 여유를 연상케 해준다. 

‘이는 갖가지 유혹을 겪는 우리 인간이 본받을 점이다.’ 나는 억새 앞에서 또 하나의 상상을 한다. 변절을 쉽게 하는 우리가 억새에게서 지조와 마음의 평정을 배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은 물질만능과 정신적 고갈상태에 처해 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경각심이기도 한다. 

억새에 대한 생각은 갈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갈대라고 하여 억새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갈대와 억새, 억새와 갈대에 대한 이율배반적 사고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억새라는 어감에서 긍정적인 느낌을 갖는 반면에, 갈대에게서는 부정적인 느낌을 갖는다. 

그것은 저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서의 <여자의 마음>이 우리 내부에 잠재해 있기 때문이라 본다. 중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던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은 여자의 마음……”이 그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처럼 여자의 마음이 흔들린다는 가사를 바꾸어 말하면, 여자의 마음이 갈대처럼 종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매우 잘못된 표현이다. 이런 지조 없는 여자에게 비유되었음은 갈대에 대한 모독이다. 더욱이 여자를 싸잡아 이렇게 노래함은 여자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런 여성들이 있었다면 그런 남성들도 있을 터인데, 창작의 자유가 있다손 지나친 표현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하늘 끝에서 하늘 끝으로 가는 연극이라고 한다. 여기에 엑스트라도 조연도 아닌 주연이 되자. 그리고 여기서 건강과 억새와 갈대 같은 슬기로움과 의연함에 만점을 받자.

쾌청한 이 가을, 우리 모두 산야의 억새와 강변의 갈대에게로 가자. 그들이 젊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억새와 갈대가 우리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