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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문명의 기계와 멀리 하자.사설조회수 2940
관리자 (chambit)2013.06.24 14:33

참으로 말이 많은 세상이다. 그 말 많은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일단은 성공한 경우라고 봐도 좋을 듯 싶다. 여기에서 말의 외연은 상당히 넓게 봐야 한다.

기본이 되는 인간 고유의 말인 음성언어와 문자언어, 그리고 쌍방의 소통, 그 말(언어)을 매개로 한 세상의 온갖 정보와 지식, 또 그것의 습득과 전파등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이나 기술의 획기적인 발달과 발전에 힘입어 이제 세계는 그야말로 하나가 되었고, 하루생활권이 되었다.

기계문명의 확산으로 지구 곳곳은 거의 동시간대에 정보교환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우리는 그 많은 정보나 지식을 취하고 발전시키는 소화력에도 많은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 

더 나아가 과거에 비해 일반상식이나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에도 기계문명의 발달 속도만큼이나 빨라지고 달라지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의 경우 과제의 답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과거 대학생들보다 훨씬 단선화, 현대화, 문명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학생들은 과제를 받으면 텍스트를 찾아 일차 도서관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그때만 해도 전문 텍스트를 제외하고는 다른 방법으로 과제의 자료를 구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무조건 도서관의 신세를 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두껍고 헐고 메케한 냄새까지 풍기는 텍스트를 한 장 한 장을 넘겨가면서 메모할 때의 그 성취감은 지금 학생들에게 설명할 방법은 딱히 없다. 그렇다고 과거의 방식이 옳고 지금의 방식이 틀린 거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만큼 우리 시대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그럼에도 지금의 방식을 탓하고만 있는 자는 시대의 변화를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말테니까. 개인적인 경험의 조각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 강의 중에 한자공부를 하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자 그것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어보는 학생들을 간혹 발견했다. 그 단말기는 즉각 학생이 원하는 해답을 가져다주었다. 아주 충실한 파트너 구실을 충분히 해내었다. 다소 생소한 장면이었지만 당혹스런 감정을 겉으로까지 표현할 수는 없었다. 모든 사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바, 디지털기기의 역기능을 감안한다하더라도 그것의 순기능을 상쇄시킬 수는 없는 법. 나는 그 강의시간에 혹여 시대에 뒤진 아날로그세대라는 욕이나 핀잔을 먹지 말아야 되지 않겠는가하는 속셈에서 더 이상 시비를 걸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본란에서는 따질 건 따져보자.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은 법이다. 문명의 이기가 우리 생활을 훨씬 편리하게 변화시키고 있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 인간에게서 빼앗아가는 중요한 덕목이나 가치문제가 있다. 그 중요한 사실을 우리가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정보나 지식의 경우만 보아도 과거의 것과 요즘의 것을 비교해 보면 많은 차이가 난다. 요즘 학생들의 정보나 지식은 호흡이 짧다. 뿌리가 쉬이 뽑힌다. 때로는 너무 감성적인 모양새다. 디지털문화에 익숙한 젊은이들의 지식 쌓기나 담론 또는 그 과정은 변화무쌍하고 싱그럽고 화려하고 톡톡 튀는 장점도 있지만, 그것은 반대로 경박하고 긴장감이 떨어지고 단세포적이라는 단점도 있다. 

그 근본적인 까닭은 무엇인가. 기계문명 탓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과학과 기술에 너무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형국이다. 아무리 과학이나 기술이 발전하고 진보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귀한 인간 활동의 보조수단이 되어야 한다. 학과목의 과제를 풀고, 상식을 축적하고, 지혜를 터득하는 일련의 학습과정이 사실 과거방식인 오프라인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효율적이지 않을까. 요즘 남녀노소 불문하고 필수품이 되어버린 휴대폰의 경우만 보자. 하루일상의 시간표에서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그 이상으로 그 기계에 구속당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