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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토목공학과 1/김재식조회수 1029
관리자 (chambit)2013.01.21 10:31

숫자가 쏟아내는 정겨운 재잘거림,

<박사가 사랑한 수식> 토목공학과 1•김재식 


11월, 쓸쓸한 계절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가을은 매우 두근대는 계절이다. 바로 ‘수능’이라는 내 인생의 큰 사건이 잠재되어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매년 11월 둘째 주 목요일에는 ‘수능’이라는 큰 사건이 60만 명이 넘는 수험생들의 삶 속에 녹아든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12년 학생으로서의 삶이 모두 쏟아지는 날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능’은 정말 별것 아닌 날이다. 하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불안하고 초조하며 가슴이 두근거렸을까? 아마도 이날 하루로 모든 것이 좌우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삼세판도 아니고, 단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나를 두근거리게 한 일등공신은 아무래도 2교시에 치른 ‘수리영역’이었다. 

가까이하고 싶지만 너무 먼 당신이었던 교과목 수학! 물론 명쾌한 정답이 있고,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답을 맞이하는 순간의 짜릿함 때문에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에게, 또 수험생들에게 수학은 어렵기만 한 존재였다

. 이러한 수학을, 학문이 아닌 삶의 영역에서 만나게 되었다. 바로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통하여 어렵게만 느껴지는 수학을, 정겹게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작가 오가와 요코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은 여운을 달래기 위하여, 단숨에 소설까지 읽었다. 영화와 소설 모두 숫자가 쏟아내는 정겨운 재잘거림이 담겨 있었다. 영화의 중심에는 이상한 중년 남성이 서 있다. 이 중년 남성은 이상한 수학 박사이다. 모든 것들을 숫자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풀이한다. 게다가 수학 박사의 기억 한계는 80분이다. 

젊은 시절의 사고로 뇌가 손상되어 80분마다 모든 기억이 원위치(리셋) 된다. 그래서 그는 중요한 사실을 메모하여 자신의 몸에 붙인 채로 생활한다. 혼자의 생활이 힘든 그를 위하여 형수는 가정부를 고용한다. 하지만 9명의 가정부들은 괴상한 그의 삶에 두 손 두 발을 들고 나가버린다. 80분마다 기억이 원위치 되는 그와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때 미혼모 쿄코가 등장한다. 쿄코는 수학 박사가 괴상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수학 박사의 수학 이야기를 흥미롭게 생각한다. 

그의 수학 이야기 속에서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을 발견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쿄코의 아들에게 그는 ‘루트’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학의 재잘거림 중 가장 정겨웠던 부분이 바로 이 ‘루트’이야기였다. 수학 박사는 ‘루트’와 야구라는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친해진다. 비록 자신이 ‘루트’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어느 날 ‘루트’가 야구시합에서 다쳐서 속상해하는 쿄코에게 이러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괜찮아, 안심해도 돼. 루트 기호는 튼튼해. 모든 숫자를 보호해주지.” 영화를 보기 전에는, 치열하고 뜨겁게 임했던 ‘수능’의 두근거림을 끝으로 장렬하게 수학과의 ‘이별’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수학과 나의 삶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내 삶 곳곳에 아직 수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의 모습이 아닌 숫자의 아름답고 정겨운 재잘거림이 더 드러난 채로 말이다. 영화 속 등장하는 소수 이야기, 루트 이야기, 우애수의 이야기 모두는 나의 삶에서 수학을 다른 방식으로 두근거리도록 하였다. 그동안 점수의 억압 속에서 수학의 진면모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여전히 학문의 장 속에 갇혀 수학을 딱딱하게 보고 있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더불어 수학에 한정하지 않고, 팍팍한 삶을, 딱딱한 이야기를 정겹게 풀어내는 힘을 얻고 싶다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만날 것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