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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을 강조하는 송원대학교 신문방송국

학생들이여 봄을 탐하자.사설조회수 2784
관리자 (chambit)2013.05.21 15:26

엊그제 봄이 오나 싶었는데 벌써 5월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보면 ''삼월이 오는 봄이고, 오월이 가는 봄이라면, 사월은 머무는 봄이었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렇다. 올 봄도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고 있다. 봄은 새 생명체이다. 봄은 신록이라고 노래 부른다. 봄은 청춘에 비유되기도 한다. 또 젊음에 견주어지기도 한다.

무슨 연유에서 그런 접근이 가능한 것일까. 기후의 선순환구조에 의해 봄은 사람이 활동하기에 가장 적합한 계절이라는 뜻이겠지만, 여기에서는 그것에다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젊은 대학생들의 감성과 낭만, 즉 청춘을 만끽할 수 있는 여유와 정신이 가장 왕성하게 창조되는 계절, 즉 삶의 생산적인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절기라는 해석이 더 큰 것 같다. 청춘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워야 한다. 청춘은 무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탐험가여야 한다. 그럼 하늘을 날고 세계를 모험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연결고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것은 아주 큰 담론이 아닌 작은 담론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재미있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국어사전에 ‘재미''란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우리 삶에서, 특히 청춘의 시간에 그런 재미를 찾는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청춘의 가슴을 뛰게 하고 설레게 할 만큼 가치 있는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그리고 그 행위가 무엇이든 그것은 남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부조리한 현실을 개조해보겠다는 사회운동이 되어도 좋고, 인생의 역량과 지식을 도모할 수 있는 책읽기에 빠지는 일이어도 좋고, 내 이상형에 어울리는 이성을 찾아 헤매는 연애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걸어도 좋고, 아주 작고 일상적인 일거리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를 찾아나서는 일도 좋다.

이런 선택 가운데 무엇이 더 큰 가치가 있고 무엇이 그보다 못하는가의 반문은 지혜롭지 못하는 우문이다. 무슨 꿈을 꾸든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면 되는 것이다. 큰 문제는 큰 대로 작은 문제는 작은 대로 나름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때로는 가벼움이, 사소함이 우리를 더욱 우아하고 거룩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는 불행하게도 너무 크고 무거운 듯한, 즉 거대하고 형이상학적인 현상만을 쫓는 경향이 있어 왔다. 결코 한 사회를 건강한 조직체로 이끌어갈 보약이 못되는 가치전도의 이념인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이든 청춘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지만, 그 선택에는 모두 자신의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청춘들이 이런 무거운 책임의식을 자발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젊은이들에게 의무만 강조하는 사회는 환영받지 못한다. 청춘들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꿈을 꿀 수 있도록 알맞은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책임은 대학사회나 기성세대가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