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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버마 난민촌 자원봉사조회수 1095
관리자 (chambit)2012.03.2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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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과 2•여경희

 

 천주교 광주인권평화재단에서 실시하는 2012년 제2차 버마 난민촌 봉사(1월 30일~2월 9일)를 기말고사 전에 성당 주보를 통해서 모집하기에 신청서를 제출했더니 1월초 연락이 와서 간호과 학생이라 의료팀에 소속되어 봉사자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꼼꼼한 준비를 위해서 제3차까지 모임을 갖고 헌옷, 뜨개실, 리코더, 학용품 등은 포장을 했지만 의약품은 세관통과하기가 힘들어 주사제는 가져갈 수가 없고 몇 종류의 약들만 각자의 배낭에 나누어 담았다.

1월 30일 드디어 봉사자들과 가져갈 짐을 챙겨 5시간 30분 비행기를 타고 31일 새벽에 방콕 공항에 내려, 짐이 많은 관계로 2층 전세버스를 9시간을 타고 지도상으로 버 마와 국경에 있는 메솟시에 오후 세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각자의 짐정리와 학교에 가져갈 박스를 분류하고서 낯선 이국땅에서 잠을 청했다. 2월 1일 7시에 기상해서 아침을 먹고 트럭 뒤칸에 타고서 50분거리의 군부세력에 쫓겨난 카렌족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서 그곳 주민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료 활동을 했다. 진료는 같이 가신 의사선생님이 하시고 진료 전에 체온과 혈압을 체크하고 처방하시면 약이랑 파스, 소독약 등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는 일을 했다.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다니고 여자들은 속옷이 없어서 안 입었고 물이 부족해서 씻지를 못해서 아이들의 손과 발에는 새까만 때가 꼈고 어른들은 난민들이라 일자리가 없어서 대부분 집에 있었고 힘든 만큼 아픈 곳을 온몸으로 표현하여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감정으로는 아픔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날마다 지역이 다른 학교에 찾아가서 그곳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의료봉사를 해주었다. 5일날(일요일)은 점심을 먹고 메솟시내 난민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로 의료팀만 봉사를 갔었는데 손님이라고 생수를 커다란 컵에 따라서 쟁반에 받쳐서 가져왔을 때 눈물이 났다. 가난한 그들만의 고마움의 표시였다. 두 살, 네 살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갓난아이 크기도 안 되는 키에 까만 눈만 깜박거릴 땐 데리고 와서 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갓난아이가 있는 애엄마가 부끄러운 듯 카렌어로 피임약 있느냐고 물어본 기억이 난다. 없어서 못줬는데 마음에 걸렸다. 젖먹이가 있어서 임신하면 안된다는 말을 했었는데….

 화요일엔 트럭에 타고 세 시간 이동해서 비포장도로에 흙먼지에 시냇물을 건너고 낮에는 30도의 날씨에 온몸은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되고 차에서 내려 가뭄에 말라버린 옥수수 밭을 걸어서 태국과 버마 사이의 강을 긴 나무로 된 배를 20분타고 버마 정글지역에 내려서 숲속을 걷고 걸어서 이제 겨우 터를 잡아서 이루어 놓은 카렌족 난민촌에 도착하니 12시가 되었다. 내리쬐는 태양과 우리를 반겨주는 어른들과 아이들, 총을 든 카렌족 전사들이 질서 있게 대기하는 모습과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는 소박한 모습들 열심히 진료를 도와드리고 1년 후를 기약하며 가져간 의약품도 다 나누어 드리고 왔었다.

9박 10일간의 의료 봉사를 마치고 되돌아보니 부족함도 많고 약을 포장해야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 백 마디 말보다는 직접 가서 봉사자로 참여해보니 삶에 불만이 많았던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몸소 느꼈다. 간호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론과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나이팅게일 선서문처럼 기회가 된다면 다른 학생들도 꼭 한번 가서 봉사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