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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는 ‘學과 習’이다시론조회수 2973
관리자 (chambit)2013.03.18 15:25

우리에게 영어란 무엇인가?

영국과 미국의 식민주의가 남긴 유산의 일부였던 영어가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면서 그 위상이 한층 강화되었고, 아울러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의 세계화(Globalization)정책과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가는 통신ㆍ교통수단의 발달에 힘입어 지금의 영어는 전 세계에 통용되는 국제 언어(International Language)로 자리 매김하였다.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도 아니었던 한국에서도 자발적 선택과 동의에 의해 모두가 영어를 배우려고 아우성이다.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증에 전국은 지금 영어열풍에 휩싸여 있다. 물론 영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문제는 영어를 습득하기 위한 방법이 매우 비합리적이라는 데 있다. 날마다 매스컴의 광고란을 장식하는 수많은 영어비법에 지금 전 국민이 현혹되어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나도 그런 광고를 보고 정말 어떤 비법이 있을 것 같아서 몇 차례 그런 책을 사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결같이 책 내용대로 실천하기가 쉽지도 않을 뿐더러 저자의 주장대로 그렇게 실력이 향상될 수 있을까 의구심만 남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의 특이한 경험이 대중에게 모두 통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코 영어 학습의 비법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내 나름의 결론을 재확인하는 데 그칠 뿐이었다. 

공자(公子) 사후 제자들이 스승과 생전에 나눈 대화를 논어(論語)로 엮었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에 등장하는 말씀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배우고 때맞춰 익힌다)이다. 공자와 제자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인간상이 군자(君子)였고, 군자가 되려 택한 게 바로 ‘학(學)과 습(習)’이다. 여기서 學은 스승의 지식과 지혜를 본받는 것이고 習은 복습(復習)을 의미한다. 

주자(朱子)의 주석에 의하면, ‘學’이란 본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본성은 모두 착하지만 깨달음에는 사람마다 선후가 있어서 뒤에 깨우치는 자가 먼저 깨우친 자의 행위를 본받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반면 ‘習’은 배우고 그치지 않기를 마치 새가 자주 날갯짓하듯이 하라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한자 조어의 의미를 찾아보면, ‘習’은 갓 부화해 솜털조차 나 있지 않은 새가 날갯짓을 반복하다 보면 날개(羽)에 하얀(白) 깃털이 자라고 힘이 붙어서 날게 된다는 뜻글자다. (*날개짓(羽)을 100번(白)을 해야 날 수 있다는 해석도 있음) 사람들은 학습(learning)을 한가지의 의미로 생각한다. 

하지만 ‘學과 習’은 각각의 의미가 있으며 어디 치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어로 學은 ‘배운다(learning)'는 의미이고 習은 ’연습한다(practice)'는 의미다. 그래서 학원(學院)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집이고 학습관(學習館)은 공부하고 연습[복습]하는 집이라는 의미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저서 『아웃라이어 Outliers』에는 ‘1만 시간의 법칙’에 관한 내용이 있다. 말콤이 만들어낸 시조어이기는 하지만, 자기 분야에서 최고 1만 시간 동안의 노력을 기울이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1만 시간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3시간의 시간을 할애한다면 10년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렇게 1만 시간의 노력을 다했을 때 비로소 우리 뇌는 최적화된다고 한다. 천재를 다룬 대부분의 책이 천재적 재능은 지능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의 산물이라고 역설한다.

셰익스피어는 제자들에게 “천재는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고, 둔재는 경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고 가르쳤다. 머리만 믿고 낚시로 고기를 잡는 사람보다는 저수지의 물을 다 퍼내서 고기를 잡는 힘든 노력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다.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과정을 통해서 그 위치에 도달한 것이지, 특별하게 똑똑하고 영리해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배우는 재주만 있고 쉼 없는 연습이 없었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겠는가? 김연아 선수는 초등학교에서 스케이팅을 시작해서 14년 동안 13만 번을 점핑했고 3만 번을 빙판 위에 넘어졌다고 한다. 마치 새가 자주 날갯짓하듯이 반복해서 이룬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영어를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같은 선생님에게서 배웠다고 가정해보자. 일등과 꼴찌의 격차는 배움(學)의 재주가 아니라 성실한 연습(習)에 있음을 모든 학생들이나 교사가 깨달아야 한다. 영어는 기능(skills)교과이므로 발음연습, 듣기연습, 말하기연습, 읽기연습, 쓰기연습을 매일 쉼 없이 자기 주도적으로 연습해야만 성취될 수 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영어공부는 왕도가 없으며 영어 학습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점이다. 

강에서 고기를 잡듯 둑을 막고 물을 품어내야 한다. 그래서 영어공부는 단순히 배우기만 하는 ‘학습(學習)’이 아니라, 배우고 연습하는 ‘學과 習’이 반드시 수반된 힘든 과업임에 틀림없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기 위해 꼭 에베레스트 산에 가서 훈련할 필요는 없다. 한국이라는 한정된 환경 속에서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굳이 영어권의 국가로 연수를 가지 않아도 영어는 익힐 수 있다. 미국 아이들도 실패를 되풀이하면서 그들의 언어를 익혀 나간다. 하물며 영어가 외국어인 한국인으로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學)과 습(習)의 성실하고 지속적인 반복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