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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윤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을 통해 본 두려움과 마주봄 그리고 용기조회수 1171
관리자 (chambit)2012.09.07 17:09

유아교육과·송주영

 

나의 삶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은 언제일까? 오랫동안 사귀어 왔던 애인과 헤어질 때. 월급날은 멀었는데 이미 0과 가까워 있는 통장 잔액을 확인할 때. F가 든 성적표와 마주했을 때. 이런 경우가 나의 삶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들일까?

나의 삶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두려움’을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두려움’과 마주 서기 두려워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눈 맞춤을 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비록 손과 발이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덜덜덜 떨릴지라도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똑바로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면 사실 위의 경우들은 나의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경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진짜로 두려워하는 순간들은 ‘잃어버리기 싫은 가장 소중한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은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두려움과 마주치게 되는 순간 누구보다도 크게 느껴지게 된다.

 김이윤의 소설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은 엄마의 갑작스런 암 선고에 ‘홀로 서기’를 준비하는 딸 ‘여여’의 이야기이다. 사실, ‘여여’는 청춘드라마의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은 아니다. 오히려 어디에서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적당히 씩씩하고, 적당히 청춘을 꿈꾸고, 적당히 고민할 줄 아는’ 보통 여학생이다. 단 한 가지 미혼모의 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여여는 어딘가 아이답지 않게 성숙한 아이였다.

 “엄마가 우리 여여 이름 지을 때 얘기해 주었던가?” “나 참, 백번도 더 들은 이야기잖아.” 여여는 한자로 나여(余)자에 너여(汝)자가 붙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나 먼저 챙기고 다른 사람도 챙겨 주라고 ‘여여’가 된 것이다. 이 이름 안에는 세상에 남겨질 딸에게 남기는 엄마의 마지막 당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여여, 그 이름처럼 살면 돼. 언제나 자기 자신이 제일 소중해. 자신이 소중하면 자기 몸과 마음을 아무렇게나 하지 않아. 얼마가 있든 없든, 가난하든 넉넉하든, 슬프든 기쁘든, 언제나 소중하게 귀하게 자기 몸과 마음을 위해 주어야 해. 그러면 좋은 사람은 저절로 되는 거야.”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 딸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는 엄마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엄마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여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이름은 ‘언제나 나를 소중히 여겨’와 ‘언제나 여여가 가장 소중해’가 일치되는 이름인 것이다. 그렇게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놓고 가며 두려움에게 인사 중인 엄마에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는 ‘여여’의 행동이 더 안타까웠다. 다들 짐작하고 있겠지만, 소설 속 ‘여여’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여’는 책 속에서 단 한 번도 엄마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저 담담하게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홀로 서기를 준비한다. 어떤 경우에도 엄마와 헤어지는 것이 두렵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말로 ‘여여’는 ‘두려움’과 마주쳐 담담하게 인사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여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누구든지 ‘두려움’을 가슴에 품고 산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에게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사실 ‘잃고 싶지 않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두려운 순간’과 어떻게 마주칠 수 있을 것일까? 나는 아직 ‘여여’처럼 나름의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여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두려움’과 마주쳤을 때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이 용기, 나만의 해답을 찾기 위한 시작 지점에 똑바로 서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