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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만나는 인문학의 향기사설조회수 2766
관리자 (chambit)2012.12.07 11:22

보통 전통적으로 인문학이라고 하면 문학ㆍ역사학ㆍ철학을 범주에 넣는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모든 사물이 변하고, 그 변화의 물결에 따라, 그 사물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달라지듯(물론 본질은 그대로 일 수도 있지만), 현대에 와서는 인문학에 대한 범위와 가치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에 와서는 사고 작용과 말하기 또는 글쓰기 문제(이런 문제는 한 인간의 품격을 진단할 수도 있는 고비가 될 수도 있는 것)까지 그 범주에 포함하기도 한다. 문제는 무엇 때문에 최근 들어서 과거에는 무시되던 그 인문학을 다시 보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대학이나 그 학문을 전공한 소수자의 세계에서는 꾸준히 문제 제기가 이어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인문학의 가치나 인문의 힘을 사회 각계에서 인정하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대는 절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여기저기에서 그 흔적이 엿보인다. 과학문명의 시대에서, 디지털이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구속하는 지식정보의 시대에서, 인문학의 위력은 무엇이고, 그 힘의 원천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문제에 앞서 생각해야 할 과제가 있다.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집단적인 광기, 즉 별 소득도 얻을 수 없는 경쟁구도(물론 어느 특정영역,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술개발이나 상품생산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와 좌고우면의 지혜를 말살해버리는 연속되는 속도전의 함정이다. 

인문학의 가치는 애초부터 존재해 왔던 것인데, 우리 사회의 그런 비건강성(비인간적ㆍ비문화적 사고형태나 교육방식 등) 때문에 우리는 그 진정한 가치를 외면하고 왔을 뿐이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그 본연의 가치를 깨닫고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훨씬 따뜻해진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진정한 힘은 무엇인가. 선배들의 입을 빌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나의 답이 나온다. 그 답은 바로 ‘통찰력’이다.

그 통찰의 힘을 키우는 데 최고의 자양분이 바로 인문학, 즉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것이다. 개인에 있어 통찰은 ‘나를 설명하는 힘’이 된다. 음식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천천히 먹어야 하듯, 자신을 완벽한 개체로 다듬기 위해서는 느림의 미학의 가치를 소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인문학이다. 생각하는 사람, 즉 진정한 사유가 무엇인지, 남을 위한 배려가 무엇인지, 또 겸손과 절제는 무엇인지, 왜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지 등을 알게 해주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 안팎에서 인문정신을, 기업경영이나 국가경영에 접목하고자 하는 변화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문학의 이런 가치와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가을을 가리켜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인간의 오감과 감성이 가장 풍성한 이 가을에, 나를 키워주는 인문학 여행을 떠나는 것도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