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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다른 기억 온다리쿠 《브라더 선 시스터 문》조회수 1175
관리자 (chambit)2012.05.24 17:17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유아교육과3•정겨운


온다리쿠의 소설은 알록달록한 색실이 이리저리 섬세하게 얽혀있는 것 같다. 그녀만의 아름다운 언어 표현은 소설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그뿐만 아니라 소설 속 여러 사건의 흐름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어 준다. 이번에 읽게 된 소설 《브라더 선 시스터 문》도 온다리쿠만의 풍성하고 섬세한 색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혹시 ‘해님 달님’에 대한 이야기인가?’하는 재미있는 상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책 제목이 마치 한국의 전래 동화 ‘해님 달님’의 영문 버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 속에 우리의 전래 동화를 착용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온다리쿠 소설 속에 등장하는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전래 동화 ‘해님 달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책을 펼치기 전부터 시작된 재미있는 상상이 책을 읽는 내내 더 많은 상상거리를 제공하였다.
‘해님 달님’의 영문 버전 제목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사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영화의 제목이다. 이 영화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를 담고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늘의 태양과 달 등의 모든 자연물을 형제요, 가족으로 여겼다. 즉, 영화 제목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는 소설의 제재였다. 소설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소설 속의 영화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을 함께 본 세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놓고 있다.
글을 쓰고자 하는 니레자키 아야네, 베이스를 치는 도자키 마모루, 성공한 영화감독 하코자키 하지메. 이 세 명의 친구들은 많은 것들을 함께 공유하며 성장하였다. 도쿄 외곽에 있는 같은 마을에서 살고,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모든 성장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다. 하지만 함께 성장하고 함께 경험한 것들을 보는 시선은 모두 달랐다. 세 인물은 분명 같은 하루를 보냈지만, 그 하루에 대한 기억은 모두 달랐던 것이다. 즉, 소설 안에서는 같은 사건, 다른 기억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하루를 보내고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과연 특별한 것일까? 이상한 일일까?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같은 것을 보고 모두 다 똑같은 생각, 똑같은 파편을 기억한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똑같이 전래 동화 ‘해님 달님’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동화의 각기 다른 부분들을 인상적이라고 지목한다. 같은 출판사, 같은 작가, 같은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을 보더라도 인지하고 기억하는 부분이 다른 것이다. 한 사람은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인상 깊게 보았다면 다른 사람들은 호랑이가 동아줄에서 떨어진 것을 가장 강렬하게 기억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같은 것을 보면서 느끼는 다른 생각을 풀어내는 것이 나의 진짜 생각일 수 있다. 오히려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남과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나의 위선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