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을 강조하는 송원대학교 신문방송국

1리터의 눈물조회수 1137
관리자 (chambit)2012.05.24 17:10

1리터의 눈물편정화•민지혜


책을 읽어 본 게 도대체 언제일까라는 물음에 기억을 되짚어 보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로 나 자신을 두둔해 보지만 대학생으로서 일 년 독서량이 거의 제로임을 생각해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책을 읽어 볼까라는 생각으로 여러 일본과 관련된 책들을 살펴봤다.
실로 많은 양의 일본 관련 책들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었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중에 책 진열장 귀퉁이에서 파랗고 아담한 크기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1리터의 눈물」이었다. 이미 수업시간에 「1리터의 눈물」을 바탕으로 하여 제작되었던 드라마를 소재로 단어라든가 문법, 일본문화에 대한 수업 진행이 이루어졌었기 때문에 별다른 부담 없이 책을 선정할 수 있었다.
「1리터의 눈물」 도무지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드라마의 내용을 잠깐 설명해 주셨기는 했지만, 기억에 남는 건 불치병에 걸린 한 소녀의 일기라는 것 뿐이다. 일본 드라마에 관한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드라마의 내용이 아닌, 단지 예쁘장하게 생겼던 드라마 속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1리터의 눈물」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위해, 또한 이 책이 탄생하게 할 수 있도록 일기를 써 왔던 ‘아야’라는 소녀와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를 위해 첫 페이지를 넘겼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등장하는 것은 한 소녀가 교복을 입고 행복한 듯 웃음 짓고 있는 사진이었다.
“아야 15세” 해맑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는 한 소녀는 마치 ‘환영해, 어서 와’라고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 주었다. 조금은 더 친숙하게 그녀와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야는 병을 얻기 전에는 단지 평범하고 꿈 많은 한 소녀에 불과했다.생일에 기뻐했고 캠프에 간다는 자체로 들떠있던 여느 또래 아이들과 같은.
하지만 비가 오는 등굣길에서 넘어지는 순간 손이 아니라 턱이 먼저 부딪히게 되고 이상하게 여겼던 어머니로 인해 병원을 찾아가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 ‘척수소뇌변성증’ 아야가 앓았던 병명이다. 근육이 점차 마비되어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결국에는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으며 언어장애, 호흡장애 등이 뒤따르는 실로 무서운 병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일기를 보면 병의 증세가 악화하여 국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생명이 위험해 질 수 있는, 말로만 들어도 소름끼치는 병을 단지 15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가 앓았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야는 병을 얻고 분명 고통과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녀는 일기에서 ‘왜 병은 나를 선택한 걸까. 운명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면서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건강했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살기 위해 노력했다.
편하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이동한다든지 또는 휠체어를 통해서 이동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걷기 위해 노력해 왔고 또한 빨래를 한다든지 기타 여러 가지에 있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병의 증세가 악화되어 남의 도움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기는 하지만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의지는 분명 다른 사람에게 교훈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병의 진행이 되어가는 동안에 그녀가 써 왔던 이 일기가 그녀의 노력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야는 더 쓰고 싶어도 더 쓰지 못했던 일기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적고 있다. 이처럼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 분명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던 아야. 딱히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엔 그녀는 25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한동안 멍한 상태였다. 왠지 모를 공허함이라고 할까, 가슴 한 구석이 아파왔다. 왜 세상은 이처럼 불공평한 건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착한, 그리고 의지가 강했던 평범한 소녀가 무슨 잘못이 있었기에 저토록 무서운 질병을 앓아야만 하는 건지. 또 다른 한편으로 ‘나는 저런 병에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인간 본성의 이기적인 안도감이 나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분명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커다란 수확이 몇 가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의지’이며 ‘감사’이며 ‘삶의 이유’이다. 사실 나는 의지가 없는 편이다.
무언가를 해 보려는 의욕은 강한 반면에 어떠한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중도에 포기해 버리고 마는 성향이 강하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그랬고 공부를 해도 그래왔었다.
‘이번 방학엔 돈을 모아보자’라는 생각으로 몇 차례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해 버리기 일쑤였다. 또한 자격증이나 영어를 공부해볼 요량으로 책만 잔뜩 사 두고 한두 번 보고 책장 깊숙이 넣어버리고 만다. 분명 고쳐야 할 점이다. 작은 일 하나라도 끝까지 추진할 수 있는 그러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었고 이 책을 통해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더욱더 확고해 졌다. 너무나 힘든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녀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고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부모님의 ‘정성’이 필요했고 친구들의 응원이 필요했으며 기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 왔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를 갚는 것조차도 부모님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도리가 부족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감사’를 너무도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또한 친구들도 나에게 있어서 단지 같이 놀기 위한 친구가 아니라 내 인생의 크디 큰 요소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분명 산소는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언제나 존재해 왔고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산소가 없어진다면 당장에 우리는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 산소와 같은, 아니 그보다 더 소중하고 더 참된 가치가 있는 여러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문득 아야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무릎과 팔을 사용해 기어가다가 똑같은 자세로 그녀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서러움에 복받쳐 복도 한 가운데서 부둥켜 앉고 바닥에 눈물이 고일정도로, 머리카락이 눈물범벅이 될 정도로 서로 울었다는 대목이 생각나면서 목이 메어 옴을 느낀다. ‘삶의 이유’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나의 생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보다 명확해진 것은 나라는 인간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유기체적인 목적에 의해서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있기까지의 ‘감사’한 여러 사람들의 나에 대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고 그러한 기대의 부응의 한 도구로써 ‘의지’가 필요하며 그러한 기대의 결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분명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야는 그녀 자신이 비록 몸이 점차적으로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어떤 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진로에 관해서 고민해 왔다.
나 또한 진로에 있어서 구심점을 찾아서 적어도 ‘삶의 이유’가 될 수 있는 방법과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양호학교로 전학 가는 것을 결심하면서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저는 히가시 고등학교를 떠납니다. 그리고 장애자라는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짊어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결단을 내리기까지 1리터의 눈물이 필요했습니다.’그녀가 흘린 1리터의 눈물. 이것이 의미하는 바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성숙’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워하기도 하고 슬퍼했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해내 보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러한 눈물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의지’와 ‘감사’와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의 산물로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