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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동 강의 스토리 수상작] 장려상 - 나를 이겨라조회수 1718
관리자 (chambit)2013.09.24 13:44

언어재활심리학과/안희영


매일은 아니지만 나는 일기를 쓴다. 15살 때부터 해온 일이니 벌써 5년은 된 셈이다. 연중 행사처럼 새해가 밝거나 새로운 시즌을 맞게 되면 나는 꼭 그 기간동안 목표를 정하고 계획도 제법 구체적으로 세우곤 했다. 목표들은 거창한게 아니다. 그 나이대 여자애들이 흔히 세울말한 다이어트나 혹은 아침등교할 때 자외선 차단하기, 학생의 본분임을 감안해 하루에 영단어 몇십개씩 외우기, 이번 모의고사 몇등급 나오기 등 당연하면서도 반드시 해야할 목표들이었다. 물론 나는 올해에도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짰다. 이제는 스무살이고 어른이니 위기감을 가지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내용의 계획들이다.

나는 내 계획들을 일기장에 적는 것도 모자라 큰 종이 하나 사서 다시 옮겨 적고 내 자취방 잘 보이는 벽 쪽에 붙여 생각 날 때마다 보곤 했다. 생각했던 것 만큼 대학생활은 자유롭고 편안했다. 내 좋은 시간대에 재밌어 보이는 강의를 선택해 수강신청해 들으면 되는 것이고 심지어 지각 하거나 결석해도 점수만 깎일 뿐 누군가에게 나무람을 들을 일이 없었다.(물론 지각 결석한적 없지만)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눈치보이던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이였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자취생활을 시작하자 옆에서 제재하는 사람들이 없어졌고 나는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깜짝 놀랄만큼 나태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일상은 평범하고 단조로웠다. 휴대폰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나 간단히 아침밥을 챙겨먹고 스쿨버스를 타서 학교에 도착해 그 날의 수업을 듣는다. 그 날 과제가 있으면 공강때 얼른 끝내고 집으로 도착해서 저녁 밥을 짓고 샤워한 뒤 일찍 잠에 든다. 대학생 생활치곤 좀 재미없기까지 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태해진 것도 나태해진거지만 강하게 억압하던 고등학교 생활에서 자유로운 대학교 생활로 달라지자 남는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중간고사를 치르고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날이였다. 그 날도 수업을 다 듣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알고보니 벽 한 쪽에 붙여둔 종이가 떨어져 있었다. 종이를 집어 다시 붙일려던 손이 잠시 멈칫 거렸다. 종이의 내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목표달성은 고사하고 계획했던 것들을 하루라도 제대로 했던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묻는 말에 양심을 속일 순간도 없이 아니라고 들려왔다. 그 날 너무 자괴감에 빠진 나머지 저녁밥도 안먹고 반성했었다.

그래도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날부터 학교 수업을 전보다 충실히 듣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목표달성 하기위해 내 공부를 하려고 책상을 폈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교제에 10분 이상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머리가 안 좋은건지 마음과 달리 집중은 쉽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잇따른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이제껏 계획을 제대로 실천한 적이 없었고 당연히 목표에 도달한 적이 없었다. 지난 날의 일기장에는 무수한 목표만 적혀있을 뿐 계획에 맞춰 꾸준히 이뤄냈다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자 겉잡을 수 없이 우울해지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 무렵이였다.

내가 수요일 4,5교시 마다 듣는 현대철학의 쟁점들이라는 수업이 있다. 첫 강의때 교수님의 말씀은 강했다. “이 강좌의 목표는 여러분의 의식개선에 있습니다. 첫째는 여러분의 생각을 넓히는 것과 두 번째는 우리가 공익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한마디에 매료 되어 다른 강의도 열심히 들었지만 유독 현대 철학의 쟁점들은 더욱 집중해가며 들을려고 했던 것 같다. 기말고사를 두 주 정도 앞둔 어느 수요일이었다. 교수님은 우리를 한 번 둘러보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제 곧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기말고사가 오자마자 방학이 온다. 처음 대학에 와서 맞는 방학이니 만큼 우리들의 기대가 크고 여러 가지 방학 계획이 있을거라고. 그 말에 학생들은 저마다 즐거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도리어 심란해졌다. 방학이니 계획했던 것들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를 이기세요"

교수님은 무슨 말씀을 더 하시다가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나를 이기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상하게 가슴에 콱 박혔다. 살면서 무수한 나를 만나고 만나고 있고 만날 것이라했다. “좀 더 자고 싶은 나, 놀고 싶은 나, 쉬고 싶은 나 등등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요" 그랬다. 그 날 아침만 하더라도 나는 잠자고 싶은 것을 겨우 이기고 스쿨버스에 올라탔다. “우리가 속으로 많은 ‘나'들을 이기다 보면 인생에서도 이겨있을 겁니다." 머리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생각해보니 항상 나는 무수한 ‘나'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작게는 먹고 자고 놀고 싶은 ‘나'로부터 크게는 부정적인 ‘나'까지. 그리고 이겨야하는 ‘나'에게 번번히 지곤 했다.

한 번 깨달음을 얻고 나자 머리가 시원하게 정리가 되었다. 실은 교수님이 그 뒤에 더 말씀하셨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큼 ‘나를 이겨라’라는 말이 인상깊었기 때문이였다. 그 후로 나는 보다 수월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마인드를 바꾸자 당장은 아니지만 조금씩 나는 ‘나'를 이겨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아직은 유혹에 쉽게 져버릴 때도 있다. 그럴때면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나를 이겨라'라는 단순명료하지만 많은 의미가 담긴 그 말을. 그러면 나는 느리지만 분명히 그때의 나를 이길려고 한다. 이제는 나의 좌우명이 된 말을 해주신 서화진 교수님께 이 지면을 빌어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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